서울시가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 40년 역사에서 표준규정없이 제각각 임의적으로 운영돼온 예산·회계처리에 대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조합장 개인통장으로 자금을 관리·쌈짓돈처럼 함부로 사용하거나 각종 이권이 개입하는 등 오랜 관행으로 고착된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대책 마련 차원이다. 예컨대, 추진위원회도 조합과 같이 사업자 등록을 의무화해 법인통장과 법인카드로만 자금을 사용하도록 하고, 모든 용역계약은 일반경쟁입찰을 하도록 해 이권개입 여지를 차단하고자 했다.

또, 조합장 및 추진위원장은 주민총회결의 없이 자금을 개인에게 이체·대여·가지급 할 수 없고, 업무추진비 또한 법인카드로 지출하거나 개인카드 사용 후 금액만큼 돌려주는 실비정산방식을 명시했다. 서울시는 이처럼 자금운영 예산편성부터 관리·집행·계약·회계결산 등을 세세하게 담은「서울시 정비사업 조합 등 예산·회계규정」을 제정 완료, 서울시보에 고시하고 해설서 형식으로 제작해 정비사업 현장인 추진위·조합 총 459곳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18일(수) 밝혔다.

이번 표준규정 제정엔 조합장, 조합경리 등 이해관계자 의견청취, 조합실무자 논의, 회계·세무·법률 등 분야별 전문가 자문을 거쳐 완성도를 높였다. 앞서 시는 지난해 일부 추진위원회·조합 실태점검을 통해 자금의 부적정한 사례를 적발해 시정조치하고 사례전파를 통해 유사사례 발생을 막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관행적 부조리는 쉽게 개선되지 않아 예산·회계 표준규정을 제정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표준규정이 실행되면 공정한 예산회계업무가 이뤄져 불필요한 비용 낭비와 과다 지출요인을 사전에 방지하고 이는 사업비 절감으로 이어져 주민부담이 최소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주민들이 규정을 근거로 추진위나 조합을 통제할 수 있고, 다른 추진위·조합과 비교가 가능해져 자금사용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는 이번 규정이 강제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에 법 개정을 요청한 상태며, 그 이전이라 하더라도 주민들의 참여나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높기 때문에 각 추진위나 조합에서 자발적으로 도입해 적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조합장, 감사, 총무 등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이수 의무화를 비롯해 지속적인 예산회계 교육을 시행해 나갈 계획이다. 규정은 회계처리 원칙을 담은 전문과 6개 장, 47개 조문의 본문, 회계감사를 위해 회계사들이 참고하는 부속서로 구성된다.

주요 제정사항은 ▲추진위 사업자 등록 의무화 ▲예산편성 절차 명확화 ▲예산전용 제한 ▲현금사용 원칙적 금지 ▲휴일 사용 법인카드 내용 증빙 및 공개 ▲용역계약 일반경쟁입찰 원칙 ▲업무추진비 현금→법인카드나 실비정산방식 대체 ▲분기별 자금운영 내역 조합원 서면 통보 ▲회계처리기준 표준화 등이다. 첫째, 추진위원회 사업자 등록 의무화는 법인통장과 법인카드를 통해서만 모든 자금관리와 집행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 자금 투명성을 강화했다.

동시에 상근직원들은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4대 보험 가입이 가능해져, 정당한 근로자의 지위를 갖게 된다. 둘째, 추진위·조합이 매년 편성하는 연도별 예산편성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 과다 지출을 막고 예산목적에 맞게 집행되도록 했다. 먼저 예산은 지출예산뿐만 아니라 수입예산까지 모두 편성하도록 했다. 이는 수입에 대한 예측 없이 과다하게 지출예산만 편성해 발생하는 불법 자금 차입을 막기 위함이다. 또, 지출예산의 경우 기존에 예산총액만 승인받아 임의 집행에 따른 불법행위 의혹 등 갈등을 낳았다면, 앞으로는 개략적인 예산계획서를 작성해 주민총회 의결을 받도록 했다. 별도의 기준이 없던 예산편성 시기는 회계연도 시작일 부터 3월 이내에는 마치도록 못 박고, 조합 여건상 정기총회를 개최할 수 없어 당해 예산편성이 어려울 경우 전년도 예산을 적용할 수 있는 준예산제를 도입했다. 셋째, 기준이 부재했던 지출예산항목 또한 사용목적별로 관·항·목으로 세분화해 편성하도록 했다.

이는 편성된 예산항목을 초과 집행하거나 무분별한 예산전용을 막기 위함이다. 예컨대, 관은 운영비를, 항에는 인건비를, 목에는 급여, 상여금, 퇴직급여, 기타인건비를 편성하도록 했다. 다만, 탄력적 예산운영을 위해 ‘목’간 전용은 허용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예비비를 10%이내서 집행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업무추진비, 인건비, 복리후생비 등 과다집행 우려가 있는 항목은 타 예산에서 전용사용하거나 예비비에서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넷째, 정비사업 자금에 대한 현금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모든 자금 집행은 금융기관을 통한 계좌이체 또는 법인카드만을 사용함으로써 자금사용에 대한 증빙서류를 갖추도록 했다. 다만, 경조사비, 교통비, 우편물 반송비 등 부득이한 현금사용이 필요할 경우에는 50만원 범위 내에서 현금을 보유할 수 있다.

또한, 조합장 및 추진위원장은 아무리 사업을 위한 목적이라 하더라도 주민총회결의 없이 자금을 개인에게 이체·대여·가지급 등을 할 수 없게 된다. 다섯째, 법인카드를 개인용도로 사용하거나 가족 또는 타인에게 빌려주는 등 정비사업 목적이외에 사용을 제한하고, 휴일에 사용하는 경우 사용목적 등을 정확하게 증빙하도록 했다. 또한 추진위나 조합 감사가 카드 사용내역을 주기적으로 점검해 그 결과를 서울시 클린업시스템에 공개하도록 했다.

여섯째, 모든 용역계약은 국가계약법을 준용해 일반경쟁입찰을 기본원칙으로 검토하도록 했다. 다만, 특정부문 실적이 있는 자가 아니면 용역을 수행할 수 없을 경우에는 참가자의 자격을 제한하거나 지명경쟁입찰,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공개경쟁입찰 대상은 건설공사 2억원이상, 전문공사 1억원이상, 그밖에 일반용역은 5천만원 이상이다. 반면, 수의계약은 일반경쟁입찰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와 소송, 재난복구 등 예측하지 못한 긴급한 상황에 대응이 필요할 경우 가능하게 했다. 시는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라도 3백만원 이상일 때는 반드시 2인 이상 견적서를 받아야 하고, 시장가격, 전문성 등을 면밀히 비교해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최종 계약금액을 결정하도록 했다. 또한, 정비사업 추진단계로 보아 용역시기가 도래하지 않았음에도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미리 계약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다.

조합은 용역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실제로 용역업무가 개시되는 시점에서 계약금을 지급할 수 있으며, 중도금 지급시에도 용역결과에 대한 검수 절차를 이행한 후 관련자료를 확인하고 지급하도록 했다. 이는 용역업체 선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노골적인 업체 금품 요구 및 입맛에 맞는 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정보 유출 등 구조적, 고질적 비리행태를 근절하기 위함이다. 일곱째, 업무추진비는 더 이상 월정액으로 지급할 수 없게 된다. 대신에 다른 지출방법과 동일하게 법인카드로 지출하거나, 개인카드를 사용한 후 금액만큼 돌려주는 실비정산방식으로 대체된다. 또한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도 서울시 클린업시스템을 통해 주민들에게 공개하도록 해 조합자금을 임원이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막는 등 투명성을 높인다. 매월 사용한 내용을 다음달 15일까지 구체적인 사용용도를 명기해 올리도록 했다.

유사한 용도지만 예산항목이 분리됐던 판공비와 업무추진비는 업무추진비로 일원화 하고, 증빙이 안 되는 기밀비 등은 따로 집행할 수 없도록 했다. 여덟째, 조합장 등은 매 분기말일을 기준으로 총수입, 사업비 지출, 운영비 지출, 현금과 예금의 잔액 및 차입금 증감 내역을 작성해 조합원 또는 토지등소유자에게 서면으로 통보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한 해 예산 결산을 위해 사용하는 회계처리기준 틀을 정비사업 특성에 맞게 표준화해 제시했다.

재무제표는 자금수지표, 재무상태표, 운영계산서 및 이에 대한 주석으로 구성된다. 특히, 영업수익기준과 같은 불필요한 정보는 빼고, 주민들이 분양수입·사업비지출·차입금 등 자금흐름을 한 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이건기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추진위나 조합은 사적영역이지만 자금은 결국은 조합원들이 내는 주민재산인 만큼 낭비, 비리는 주민피해로 돌아갈 수 있어 예산·회계 표준규정을 제정하게 됐다”며 “이번 에 마련한 규정으로 관행적으로 만연된 조합 등의 부조리가 근절되고 조합과 주민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매실 기자 cute23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