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가족남녀] 존중과 배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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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은 지 꽤 됐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섭렵하느라, 또는 우리 사회의 안전이 미덥지 않아서 등 이유야 많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적어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2015년 출생아 수는 43만 8700명으로 최고점인 1971년 102만 명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출생아 수는 베이비붐 세대의 시작인 1955년 70만 명대에 들어서고도 증가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1969년부터 3년간 100만 명대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해 2002년부터는 40만 명대에서 맴돈다. 2005년이 43만 5031명으로 최저다.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은 2015년 1.24명으로 전년과 같다. 2005년 1.08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15년 째 초저출산국(1.3명 이하)이다. 부부가 2.1명은 낳아야 사회가 유지된다. 인구 1000명 당 혼인 건수인 조(粗)혼인율은 2015년 5.9건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결혼이 줄어들고, 아이를 적게 낳으니 놀이터가 붐빌 리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너 나 할 것 없이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다. 아이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아야 할 이유다. 물론 아이들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존귀한 존재다. 수억 내지 수천만 대 1의 경쟁을 뚫고 이 땅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남녀노소, 학벌, 직업, 소득, 재산, 외모 등과 관계없이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존귀하고 다른 사람이 존귀한줄 알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아내를 하녀처럼 대하지 않고 왕비처럼 대하면 남편은 머슴이 아닌 왕 대접을 받게 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서 행복을 안겨주면 그것은 나의 행복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존중 배려도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소가 자신이 좋아하는 풀을 아껴서 주더라도 사자는 배려 받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사자가 좋아하는 고기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서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해서 대접해야 진정한 존중과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게 말을 함부로 하고 고함을 질러댄다면, 폭행을 가한다면…. 그럴 때 내 기분은 어떨까. 불쾌할 것 같으면 내 생각과 언행도 바꿔야 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 탄생)에서 D(death, 죽음) 사이 C(Choice,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빅터 프랭클은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지만,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만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지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나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고, 멸시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천국과 지옥처럼 엄청난 차이로 이어진다. 배우자와 자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확산되길 기대한다. 그러면 결혼과 출산 욕구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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