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으로 인한 아래위층 이웃 간 다툼이 살인·방화, 집단난투극으로 이어졌다. 설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으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아파트 6층에 살던 A씨(45)는 이날 오후 5시30분쯤 7층 윗집에 올라가 시끄럽다고 항의했다. 윗집에는 노부부만 살았으나 이날은 명절을 맞아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이 찾아온 상태였다. A씨는 윗집의 B씨(33) 형제와 아파트 복도에서 옥신각신하다 형제를 밖으로 불러낸 뒤 B씨와 그의 동생(31)을 흉기로 차례로 찌른 뒤 달아났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B씨 형제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A씨는 이전에도 윗집에 아이들이 놀러오거나 하면 소음을 이유로 자주 항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도주했다가 5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10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다가구주택에서는 층간소음으로 윗집에 화염병까지 던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주택 1층에 사는 C씨(49)는 이날 오후 1시29분쯤 2층 D씨(67)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에 인화성 물질이 담긴 유리병을 던졌다. D씨가 지른 불로 설을 맞아 집에 모여 있던 C씨와 두 살배기 손녀 등 일가족 6명이 화상을 입거나 연기를 흡입해 병원에 실려갔다. 이들은 2년 전 누수 문제로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층간소음이 범죄의 원인이 됐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은 인천에서도 발생했다. 인천계양경찰서는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를 놓고 쌍방 폭행을 저지른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주민 E씨(36) 등 4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E씨 등은 지난 10일 오후 10시 50분께 인천시 계양구의 한 아파트 복도 1층에서 층간 소음 문제로 싸움을 벌이다 멱살을 잡거나 밀치는 등 상호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위층에 살던 A씨와 가족 2명은 아랫집 주민인 B씨(55)가 지나치게 소음이 들린다며 찾아와 따지자 이를 놓고 다투던 도중 쌍방이 폭력을 행사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지난 2011년 경기도 파주에서는 층간 소음 때문에 아랫집 주민이 윗집을 찾아가 낫을 휘두르는 일이 있었고, 작년엔 경남 창원에서 위 아래층 주민 8명이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등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환경부가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개설한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는 연말까지 전국에서 모두 7021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이는 이웃사이센터를 개설하기 전까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접수된 연간 300여건에 비하면 2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아파트 ‘층간소음’ 기준 대폭 강화 국토부 ‘주거생활 소음기준’ 내년 상반기 시행
최근 아파트 층간소음에 따른 분쟁과 사고가 살인, 방화, 집단난투극 등으로 표출되자 정부가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 주거 생활소음 기준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파트 시공 기준도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국토해양부는 환경부와의 긴급회의결과 지난 1월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이 주거생활소음 기준 신설을 골자로 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아울러 아파트 시공시 층간소음 방지 기준을 강화하는 주택건설기준 개정안도 내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동주택 입주자는 쿵쿵 뛰는 소음이나 문을 강하게 닫는 소음, 탁자·의자 등을 끄는 소음, 애완견이 짖는 소음, 야간에 골프연습기·운동기구 등을 사용하는 소음,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거생활 소음으로 인해 이웃주택 입주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이들 각 소음에 대해 용역을 의뢰해 구체적인 소음수치를 제정한다는 방침이다. 소음 때문에 피해를 본 입주자는 당사자에게 소음발생 행위 중단을 요청할 수 있고 당사자는 이에 협조해야 하며,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나서 소음행위 중단을 요구하거나 방음조치를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시설물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억제하기 위한 시설보수나 이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토록 했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현재 법제처 심의를 앞두고 있는 주택건설기준도 바꿔 층간소음 방지 기준을 강화키로 했다. 현재는 아파트 시공시 바닥두께 기준(벽식 210㎜, 무량판 180㎜,기둥식 150㎜) 또는 바닥충격음 기준(경량충격음은 58데시벨(db), 중량충격음은 50db)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도록 했다. 층간소음 만족도가 높은 기둥식구조는 바닥두께 기준(150mm)만 충족할 경우 성능기준 적용은 배제된다. 하지만 정 의원의 발의안에는 기준은 강화하면서도 이를 어길 경우 처벌 기준은 마련되지 않아 법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김원일 사무총장은 “처벌조항이 없으면 개정안은 사실상 권고안에 불과하다”면서 “층간소음이 아파트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는 만큼 특단의 조치가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층간소음’ 대형건설사 아파트가 더 심하다
아파트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는등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형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가 층간소음에 유리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과 달리 오히려 더 심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TV조선에 따르면 지난해 분양된 아파트 가운데 등급이 공개된 67곳은 대부분 층간 소음 하위등급으로 나타났다. 중량충격음은 3.6등급, 경량충격음은 3.3등급으로 평균적으로 최악 등급이다. 중량충격음과 경량충격음의 최고 1등급과 최저 4등급은 10dB 이상 소음 차이가 난다. TV조선이 대형건설사와 중소건설사의 층간소음 등급을 분석한 결과 10대 건설사가 중소 회사들보다 바닥충격음이 평균 0.4~0.6등급씩 소음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10대 건설사 중 GS, 현대산업개발, SK를 빼고는 삼성, 현대, 대우, 포스코건설 등 모두 최하등급인 4등급이다. 바닥충격음에 화장실과 옆집 소음 항목까지 합한 종합 등급은 두산건설이 10대 건설사 중 꼴찌이고, GS건설이 가장 좋다. 이 같은 등급은 입주자 모집공고 속에 공개돼 있지만 그동안 입주자들에게 커다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칼부림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날로 그 심각성이 도를 더해가고 있어 향후 입지나 분양가와 마찬가지로 층간소음이 중요한 선택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국토해양부는 올해 9월부터 이 같은 층간소음 등급 공개 의무를 현행 1,000가구 이상에서 500가구 이상 단지로 확대하고 층간소음 규제강화 등의 법률안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살인 부르는 층간소음 이렇게 막았다
아파트 층간 소음이 단순한 이웃간 다툼을 넘어 살인으로 이어지는 등 전 국민 70% 아파트거주시대에 새로운 사회 병리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있지만 2005년 이전에 지어진 대부분의 아파트가 층간소음에 취약한데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도 없어 그야말로 무대책인 상황이다. 하지만 몇몇 아파트는 자체적으로 도입한 층간소음문제를 해결할 조정 기구를 자체적으로 도입해 소음 시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어 타 아파트의 귀감이 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층간소음으로 인한 칼부림 사건을 겪었던 대구 수성구 지산동 녹원맨션(542세대)은 지난해 5월 전국에서 최초로 입주민 대표들로 구성된 소음 분쟁 해결기구인 ‘층간 소음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녹원맨션 층간소음 방지규정’을 마련했다. 방지규정에 따르면 분쟁 조정 절차는 크게 4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먼저, 피해 민원이 들어오면 조정위원회는 간단한 사실 관계를 파악한 뒤 소음을 유발한 세대에 시정을 권고한다. 2주간의 권고 기간이 끝나도 개선되지 않으면 소음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조정위원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3자 면담으로 재차 조정을 시도하고 이마저도 실패하면 조정위원회는 전문가를 동반해 현장 방문조사를 실시하고, 이후 경우에 따라 상습적으로 소음 문제를 일으킨 세대를 아파트 모든 입주민에게 공지한다. 이 규정은 소음으로 인한 분쟁당사자간 직접 접촉을 차단하면서 3자에 의한 조정력을 키우는 한편 막무가내식의 입주자들은 공동체에 공개함으로써 억지력을 확보하는 셈이며 층간 소음 시비가 이웃간 대화와 협조만으로도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해결 모델’이 됐다. 실제 녹원맨션은 이 같은 조정 절차가 시행된 뒤 소음 민원이 예전의 30% 수준 정도로 줄어들었다. 경기도 하남시 D아파트와 부산시 해운대구의 H아파트도 ‘층간소음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층간소음분쟁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경기도 하남시 D아파트는 자체 운영위원회를 발족해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통해 6개 항목의 규칙을 만들었다. 세탁과 청소 등 소음을 일으키는 가사는 일요일엔 절대 금지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에도 오후 8시부터 오전 9시 사이에는 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관리사무소로부터 시정권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3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너무하다 할 정도의 규칙이지만 층간소음의 심각성을 인식한 주민들이 잘 따라 운영위원회 발족 이후 층간소음 민원은 종전 한 달에 30건 이상에서 2~3건으로 뚝 떨어졌다. 부산시 해운대구의 H아파트 역시 지난해 10월부터 입주자대표 7명으로 구성된 층간소음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위원회가 만든 규칙은 밤 12시~오전 5시엔 샤워와 배수 자제하고 밤 10시~오전 6시 음향재생기 사용을 금지했다. 또 문을 세게 닫는 행위와 아이들이 뛰는 행위 등을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분쟁이 발생하면 위원회를 개최해 조정을 유도하고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명단을 전체 입주민들에게 공지한다. 한편 대구시는 층간소음이 개인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고 판단해 ‘녹원맨션 층간소음 방지규정’을 벤치마킹해 대구지역 각 구·군마다 층간소음 관리 시범 아파트를 지정해 운영할 계획이다. 정창오 기자 jco4321@jkaptn.com
|